"필수의료 수가 인상" "대화 협의체"…강 대 강 대치 누그러뜨릴 '힌트'

[MT리포트]전공의 공백 한 달, 드러난 K-의료 민낯(上)
[편집자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출근을 거부한 지 한 달째다. 정부가 '면허 정지'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대부분은 돌아오지 않아 환자와 병원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교수들마저 단체 사직을 예고하면서 '강 대 강' 대치가 팽팽하다. 갈등을 봉합할 해법이 시급한 이유다. 이번 전공의 부재가 중증·응급질환 진료 시스템을 마비시켰다는 점도 이번 기회에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공의 부재가 보여준 대한민국 필수·지역 의료의 민낯을 분석하고 강 대 강 대치의 해법을 찾아본다.



답답한 강대강 대치국면, 대화협의체 구성으로 실마리 찾아야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정부의 전공의 처벌 방침 등에 반발하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는 등 본격적인 집단행동을 예고한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서울대·연세대 등 19개 의과대학 교수들은 이날까지 사직서 제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24.3.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정부와 의사단체 간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한 달째 이어져 오면서 환자·병원 피해는 물론, 국민적 피로감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런 갈등 국면을 누그러뜨릴 현실적인 방안으로 '대화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공통으로 주장하는 접점이 '대화'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을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사들에게 "정부와 의사, 학생들로 협의체를 꾸려 대화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대해 수용의 뜻을 밝힌 방재승 서울대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장은 "합심해서 합의점을 찾아보도록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협뿐 아니라 국민·전공의·여야를 포함한 대화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단, 대화 협의체 '멤버'에 대해서는 의견 차가 있다. 앞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의료현안협의체가 28번이나 열렸지만, 현재 갈등의 불쏘시개가 된 의대 정원을 두고 양측 이견만 확인할 뿐 합의점은 끌어내지 못했다. 양측이 또다시 원점에서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정부는 '대표성 있는 의사단체'와 대화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이번 전공의 공백 사태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협이 의료계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접촉해보면 의협은 대표성을 갖기가 어렵다"며 "큰 병원, 중소병원, 전공의, 의대생, 교수 등 입장의 결이 다 달라서 대표성이 있는 기구나 구성원들과 이야기해야 책임 있게 논의하고 실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지난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증원 시기·규모에 대해 정부와 의협, 일반 국민, 전공의, 여야 포함한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관민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회장도 "의료·사회 전문가로 이뤄진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전공의 대규모 이탈 이후 정부가 의료개혁의 칼을 빼든 상황에서도 강 대 강 대치를 누그러뜨릴 '힌트'가 발견된다. 정부는 이번 전공의 이탈로 인한 상급종합병원 마비 사태를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의원으로 이어지는 현행 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전략이다. 중증·응급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 환자는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받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주장은 이미 의협이 정부에 십수 년 전부터 요청해온 것"이라며 "이제라도 바뀌게 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의료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대치'가 아닌 '협업' 구조로 바뀔 신호탄이 될 수 있단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와 의사단체 간 이견이 없는 또 다른 영역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 인상'이다. 다만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사단체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 대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A 교수는 "이 패키지의 이름에 필수의료가 적혀있기는 하지만, 들여다보면 수가를 인상해주겠다는 두루뭉술한 내용 외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며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올려주겠다는 약속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있었지만,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정부의 전공의 처벌 방침 등에 반발해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 움직임을 보이는 19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1층 로비에 "의사 선생님 환자 곁을 지켜주세요"라는 소원쪽지가 붙어 있다. 2024.03.19. [email protected] /사진=이무열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엔 필수의료 영역에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진료과별, 질환별 수가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인상될지에 대해선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강건욱(대한핵의학회장) 서울의대 핵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수술 한 건당 병원이 고작 수백만 원을 받을 수 있는데, 수술을 많이 할수록 해당 진료과는 병원 재정만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몰린다"며 "중증·응급 질환에 대한 수가를 지금보다 10배는 높여야 병원이 적자를 면하고, 필수의료 의사가 개원가로 이탈하려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번 강 대 강 대치국면에서 전공의 부재가 낳은 의외의 결과물은 △PA 간호사 합법화 △비의료인의 반영구화장·타투 시술 합법화 △비대면진료 적용범위 확대 등의 추진이다. 이에 대해 강건욱 교수는 "이런 결과물은 국민적 여론이고, 의사들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라며 "다만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부도 점검·해결에 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복귀 안하는 전공의, 떠나려는 교수…필수의료 대 끊기나


전공의 근무 현황/그래픽=이지혜

"되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앞으로 5~7년 동안은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한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김창수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장, 연세대 의대 교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고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 움직임을 보이면서 필수의료 체제의 맥이 끊기게 됐다는 우려가 커졌다. 복귀하지 않겠다는 전공의들이 늘고 지원자도 줄면서 필수의료 분야 인력 배출이 중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기준 전국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2892명을 대상으로 점검한 결과 계약 포기를 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전체의 92.9%인 1만1980명이다. 지난달 19일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을 시작으로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의료현장으로 복귀한 전공의 수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이들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지난 15일 오전 11시 기준 5951명에 3개월 면허정지 처분 사전통지를 발송했다.

설상가상으로 의대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기로 결의한 상태다. 서울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을 포함한 다수 의대 교수들이 오는 25일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기로 했다. 앞서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집단사직을 결의하며 오는 25일부터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16개 의대 교수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사직서를 내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집단사직마저 현실화하면 의료공백은 불가피하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료체계를 간신히 유지하는 상황인데 교수들이 사직하게 된다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초래된다"고 말한 바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응급·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하도록 하고 있는데 최악의 경우 이 환자들이 방치될 수 있는 것이다. 개원의도 진료 시간 축소 움직임을 보여 만성질환 관리에도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의료현장으로 향하고 있다/사진= 뉴스1

더 큰 문제는 필수의료 명맥이 끊겨버리게 됐다는 점이다.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 또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를 대상으로 정부가 3개월 면허정지 처분까지 내리게 되면 한 해 출석이 인정되지 않아 전공의들이 1년간 유급되고 진료 공백이 생기게 된다. 휴학한 의대생까지 감안하면 최소 5년간은 의사가 심각하게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창수 회장은 머니투데이에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 당장 내년에라도 외과를 맡으려는 전공의는 없을 것"이라며 "이제는 의료체계가 붕괴했다. 어떻게 풀 건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표적 기피과인 흉부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함께 진료하는 '소아 심장' 영역은 중요한 분야임에도 사라질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관계자는 "가뜩이나 소아 심장 세부 전문의 지원자가 매우 적은데 전공의들이 정부에 실망해 대거 이탈한 현 상황에서 소아 심장을 진료할 의사의 대가 앞으로 수년간은 끊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아 심장 관련 전문의는 1년에 1~2명 배출되는데 이마저도 없어지게 생겼다는 것이다.

결국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창수 회장은 "정부와 의료계가 전제조건 없이 서로 만나 원점에서 재검토를 논의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계에서 대표성 있는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제안한다면 정부는 언제든지 이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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