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돈먹는 하마로…재건축 살리기 안간힘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돈먹는 하마로…재건축 살리기 안간힘

'비용 지원, 절차 완화' 방안에도 시장 반응은 싸늘
대구 상공에서 바라본 시가지 아파트 모습. 매일신문DB


재건축·재개발 등 주택 정비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렸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공사비가 크게 오르며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대구시는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하고 절차를 완화하며 재건축 시장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30년 만에 명칭 변경…최대 1억원 지원

대구시는 노후된 아파트 단지가 부담없이 안전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재건축 안전진단비용 융자지원 계획을 수립했다고 17일 밝혔다. 계획안에는 지난해 11월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에 따라 안전진단 비용을 지원하는 대상과 방법, 한도 등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지원대상은 준공 후 35년 이상 지난 공동주택이며, 주민대표가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으면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이 들어오면 대구시와 각 구·군청이 안전진단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최대 1억원까지 1회에 한해 지원할 수 있다. 대구시는 다음 달에 안전진단비용 융자지원 업무처리기준을 신설하고 7월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도 1994년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하면서 도입된 안전진단이라는 명칭을 30년 만에 재건축 진단이라고 바꾸는 등 재건축 시장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재건축 진단을 통과하지 않아도 조합 설립같은 인허가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재건축 진단은 사업시행계획인가 전까지만 통과하면 된다.

문제는 시장 분위기가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자동 해제 시기가 도래한 정비예정구역 28곳 가운데 1곳만이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도시정비법은 예정구역으로 지정되고 3년이 되는 날까지 주민 동의율이 3분의 2 이상을 넘지 못하면 자동으로 해제 대상이 되는 일몰 규정을 두고 있다. 1곳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정상적인 사업 추진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

◆공사비 급등이 뇌관

기존 재건축 단지는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고 29층, 1천498가구 규모의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송현주공3단지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시공사의 일방적인 공사비 인상 요구에 1년 가까이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다음 달 일반분양을 앞둔 수성구 범어우방1차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사업 기간 공사비가 240억원 늘었고 준공도 올해 2월에서 9월로 연기됐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우수한 정비사업도 공사비 갈등을 피해가지 못한 셈이다.

시공사들은 더 큰 손해를 보기 전에 서둘러 재건축 수주에서 발을 빼는 분위기다. 대한건설협회가 국내 건설 수주 동향을 조사한 결과 지난 1월 한 달간 국내 건설사의 주거용 건축 수주액은 3조2천656억원으로 지난해 1월 3조6천903억원보다 11.5% 줄었다. 수주액은 2년 전인 2022년 1월 5조9천956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며 2018년 1월 3조2천612억원 이후 6년 만에 가장 적은 금액이다.

특히 미분양 무덤이라고 불리는 대구에서는 조합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구의 한 재개발 조합 역시 시공사가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며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가계약 당시 제시했던 공사비보다 원자잿값이 크게 올라서 시공사들이 본계약 체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며 "착공한 뒤 분양 절차가 진행되면 그나마 좀 나은데 미분양 물량이 많아 그것도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비사업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장기간 표류하는 단지도 늘고 있다. 공사비 인상 등으로 조합원 분담금이 증가하면 현금자산이 부족한 조합원을 중심으로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참여하는 '방촌가로주택정비사업장'도 공사비가 크게 오르자 일부 조합원의 반대로 3년 동안 착공이 지연됐다. 급증한 이주비와 사업비로 조합원 모두 지쳐가는 상황이다.

◆일본의 참여·공공조합원 대안

전국 정비사업이 비슷한 문제를 겪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8일 발표한 건설동향 브리핑을 통해 주택연금형 정비사업과 일본의 참여·공공조합원 제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택연금형 정비사업은 추가분담금 납부가 힘든 5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정비사업 도중 일정 시점에 주택 소유권을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게 넘기는 대신 매월 일정 금액의 연금을 수령하는 방식이다. 추가분담금이 발생하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우선 부담하고 이후 연금액을 조정할 수도 있다.

토지주가 아닌 민간기관의 현금출자를 허용해서 조합의 재무적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도 있다. 일본의 참여조합원 제도와 유사하다. 공공이 사업부지에 있는 국·공유지를 대가로 출자자로 참여하는 방식도 대안 중에 하나로 꼽힌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정비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사업구조 개편으로 사업성을 개선하고 금융구조를 도입해 분담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합
전편:정주영 회장 23주기…'신사업 박차' 정의선·정기선 등 범현대가 제사 참석
다음 편:엘앤에프, 46파이용 양극재 개발 가시화…양극재 패러다임 전환 '첨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