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쩐의 전쟁을 읽어라’…행동주의 펀드 부상 이유는?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글로벌 쩐의 전쟁을 읽어라’…행동주의 펀드 부상 이유는?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갈수록 글로벌 머니 게임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투자 대상도 주식, 채권, 부동산, 달러 등 전통적인 수단 뿐만 아니라 예술품, 골동품, 송아지, 물, 고철, 드라마, 아트 등에 이어 독특한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은 스타트업과 크리에이터에 이르기까지 돈만 되면 어디든 투자한다. 대한민국 상위 1%에 부자들도 그렇다.

재테크 환경은 가히 ‘혁명적’이라 불리울 만큼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각국이 국가 차원에서도 글로벌 머니 게임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다. 벌써부터 군사력에 바탕을 둔 두 차례 세계 대전에 이어 돈을 무기로 한 제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3차 대전의 무기가 될 세계자금 흐름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 흐르는 자금 규모는 금융위기 이후에는 6조 달러로 그 이전의 2조 달러에 비해 3배로 늘어났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거치면서 10조 달러로 한 단계 더 뛴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글로벌 게임에 첨병을 섰던 군사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글로벌 펀드들이다. 헤지펀드 전문자문업체인 헤네시 그룹에 따르면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헤지펀드 수는 10000여개, 총운용 자산은 1조 3천억 달러로 1990년대 후반에 비해 각각 3배, 10배나 급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재발 방지 차원에서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추진했던 단일금융법(일명 도드-프랭크법) 이후 헤지펀드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이때 헤지펀드의 대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도 자신의 가족 자금 이외에 나머지 자금은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그 이후 전통적인 헤지펀드들의 활동은 지금까지도 크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각국이 보유한 외화자산을 외국으로 돌려 국부를 증대시키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과 경제패권을 겨냥해 중국은 세계 1위의 보유 외화를 바탕으로 3차 대전의 무기가 될 국부를 더 쌓기 위해 사령부 격인 국가외환투자공사를 설립했다. 이 분야에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싱가포르 투자청(GIC)를 비롯해 프랑스, 아일랜드, 노르웨이에 이어 중국까지 가세하면서 돈을 무기로 한 국가 간 머니 게임이 발발한 셈이다.

뒤늦게 출발한 중국이 싱가포르 투자청의 테마섹을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은 숨은 의도는 국가외화운용기구가 중시해 왔던 안정성 위주의 중장기 자산투자에만 한정해서는 국부를 빨리 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되면 모든 대상에 투자하는 테마섹의 전략을 추진해야 국부를 빨리 쌓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국가가 순수 민간 성격의 글로벌 펀드와 전쟁을 선언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글로벌 머니 게임은 더 복잡하고 치열해졌다.

미국 단일금융법 추진으로 한동안 위축됐던 헤지펀드를 비롯한 글로벌 펀드들이 생존 차원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면서 글로벌 머니 게임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가장 큰 변화는 투자 대상과의 관계는 ‘수동적’에서 ‘능동적’ 지위로 바뀌면서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모든 행위를 하거나 동원한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행위도 불사해 글로벌 머니 게임에 이제 막 참가한 신병인 국가들과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종전에는 투자해 놓고 수익을 수동적으로 기다렸으나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고개를 들면서 이익이 기대되는 대상을 매입하거나 지분 확보 등을 통한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를 강력한 무기로 수익을 공격적으로 창출해 나가는 경향이 강화됐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 기업 사냥꾼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커크 커코리언, 넬슨 펠츠, 칼 아이칸 등이 ‘지배구조 개선의 승리자’로 탈바꿈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글로벌 펀드들의 투기성향이 약해지면 벌처펀드의 활동이 위축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미국 단일금융법 이후 주무기였던 레버리지 투자 규제 등으로 떨어지는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운 무기로 선택했던 것이 인수?합병(M&A)이다. 코로나 사태 2년째를 맞아 글로벌 M&A 거래액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정사정없는 무자비한 카지노 자본주의의 상징인 벌처펀드 성향이 더 강화되는 추세다.

‘우호적 M&A’와 ‘적대적 M&A’로 구분되는 경계선도 여지없이 무너졌다.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M&A는 기업을 통째로 먹으려는 적대적 M&A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한국에서도 행동주의 해지펀드가 2015년 이후부터 삼성, 현대에 이어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LG, SK 등 4대 그룹이 순차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글로벌 펀드들이 머니 게임에 나서는데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캐리 트레이드’다. 캐리 트레이드는 증권 브로커가 차입한 자금으로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의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투자한 유가증권의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높으면 ‘포지티브 캐리(공격 앞으로)’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를 ‘네거티브 캐리(작전상 철수)’라고 한다. 차입한 통화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와 ‘달러 캐리 트레이드’, ‘원 캐리 트레이드’로 구분한다.

캐리 트레이드의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 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투자 대상국이 수익률이 환율을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차입해 투자 대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투자 대상국과 자금 차입국 간의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의 성격상 캐리 트레이드는 반드시 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금액 비율, 군사적으로는 ‘거짓 전략’에 해당) 투자와 결부된다. 어떤 국가에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유입될 때마다 레버리지 투자로 자금이 증폭돼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자산 거품이 쉽게 발생하고 투자 대상국의 경제를 어렵게 한다.

반대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이탈될 경우 디레버리지(deleverage, 투자원금 회수) 현상까지 겹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신용경색이 일어나고 투자 대상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위기(패전)를 초래한다.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전개됐던 1990년대 이후 유럽통화위기(1991년), 중남미 외채위기(1994년), 아시아 통화위기(1997년), 러시아 모라토리움(199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2009년), 유럽재정위기(2011년), 테이퍼 텐트럼 위기(2013년) 등이 패전의 흔적들이다.

주목해야 할 것인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머니 게임의 소총수에 해당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가세하면서 더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점이다. 한국의 동학개미를 비롯해 로빈후드(미국), 닌자개미(일본), 청년부추(중국) 등의 독특한 별칭이 붙을 만큼 코로나 사태 2년째를 맞아 범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증시의 사각지대로 취급받았던 중동, 중남미 지역까지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 투자자들이 글로벌 머니 게임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전쟁터가 언택트와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개인 투자자들은 인터넷, 쇼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매개로 열린 집단지성이 가능해져 금융사 이상의 투자정보 습득과 거액의 투자 대상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 초불확실성 시대와 초연결 사회가 함께 열린 결과다.

개인 투자자 중에서도 각국의 상위 1%에 속하는 이른바 수퍼 리치들의 영향력이 커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국가, 기업, 금융사, 그리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중간 허리가 절연되는 ‘K’자형 양극화 구조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재테크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수퍼 리치들의 움직임을 벤치마크로 활용해야 한다”라는 조언이 나올 정도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양극화 추세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멀 머니 게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그동안 알려졌던 이론과 관행이 더는 들어맞지 않은 ‘뉴 노멀’ 현상이다. 전장에서 종전의 군사 이론과 전략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각 시장 간에는 ‘보완’보다 ‘상충’ 관계를 보이는 것이 관례다. 특히 투자자들의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경향이 높아지면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주식과,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경향이 높아지면서 보유 비중이 늘어나는 채권 간에는 역(逆)관계에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금융이 실물의 동맥 역할을 잘할 만큼 이들 부문 간의 규모가 비슷할 때는 특정 시장(예: 증시)이 부각되면 다른 시장(채권)에서는 자금이 이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는 주가, 금리 등과 같은 가격변수가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경제기초여건을 토대로 각종 모델에 의한 예측이 비교적 잘 맞았다.

최근 들어 이같은 정형화된 사실과 모델에 의한 예측이 잘 맞지 않는 것은 ‘유동성 장세’라 불리울 만큼 돈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자본의 크기가 실물경제의 그것보다 3배 이상 많다는 것이 국제금융시장 참여자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돈이 넘쳐 흐름에 따라 주식, 채권, 주택,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등 재테크 대상이 되는 모든 자산가격이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오르고 있다. 무기가 너무 많으면 방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선진국 자금과 개도국 자금 간의 ‘글로벌 머니 게임’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자의 세 가지 원칙은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으로 볼 때 선진국은 수익성이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으나 개도국은 이와 반대로 알려졌으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수익성도 선진국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부터 유동성이 워낙 많아져 선진국, 개도국 자금 모두가 환금성은 투자 때는 크게 고려치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금이 높은 수익을 쫓아 잉여자금은 펀드 형태로, 잉여자금이 없을 때는 금리 차를 이용한 캐리 트레이드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되는 추세도 바뀌고 있다. 개도국 중에서는 뉴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 선진국 자금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친디아(중국?인도)에 많이 유입됐으나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선진국으로 자금이 환류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띤다.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이를 개도국 자금이 메워주는 국제간 자금 흐름 메커니즘이 작동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선진국은 자금이 더 풍부해지고 개도국은 더 부족해지는 국제 감 자금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

앞으로 국제간 자금 흐름과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선진국 자금은 수익성을, 개도국 자금은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투자함에 따라 글로벌 머니 게임이 진전되면 될수록 선진국의 자산은 늘어난다는 점이다. 한국(MSCI 기준)을 비롯한 개도국들이 자국의 토종자본을 육성하고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을 만들기에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이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유지돼온 국제간 자금흐름 메커니즘이 흐트러지고 있는 점이다. 최근 들어서는 중동 산유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과잉 저축분이 미국 국채에서 선진국의 기업인수와 같은 실물자산으로 투자 방향이 옮겨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그중에서 개도국 자본이 선진국의 항만, 에너지와 같은 기간산업을 인수할 경우 선진국에게는 경제 안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 점이 2차 대전 이후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외쳐왔던 선진국이 최근 들어서는 모든 경제 현안을 자국의 주권확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제 애국주의'를 낳게 하는 주요인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해 왔던 선진국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제 애국주의로 나아감에 따라 자원 보유국을 중심으로 개도국의 반발이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세계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대내외 증시에서 원자재관련 업종의 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제원자재 가격의 수퍼 사이클 국면이 올 것이라는 시각도 끊이질 않는다.

앞으로 세계 증시의 동반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느냐 여부도 글로벌 머니 게임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선진국의 경제 애국주의와 개도국의 자원민족주의로 대변되는 경제 이기주의를 어떻게 절충해 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확률이 높다. 공존한다면 ‘대세 상승기’, 충돌한다면 돈을 매개로 한 선진국(미국)과 개도국(중국) 간 3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대세 하락기’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유념해야 할 것은 이머징 마켓과 국제간 자금흐름이 바뀌는 상황에서는 그동안 잠복돼 있던 국가 운영이나 기업 경영, 투자에 있어서 위험요인이 부각되고 있는 점이다. 세계경제포럼(WEF)는 이같은 글로벌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가 위험관리 책임자(CRO) 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이 제도는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개인에게 더 요구되는 제도다.

재테크는 위험관리의 성과다. 위험관리를 잘하기 위해 돈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하나 글로벌 머니 게임이 더 복잡하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여건에서 그동안 알려진 투자이론과 관행이 더이상 통하지 않음에 따라 각국 상위 1% 부자들의 돈 버는 기술과 경륜, 그리고 경험 등의 노트가 투자자들의 안내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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