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행정부 교과서 '프로젝트 2025'에는 뭐가 담겼나?

'트럼프 2.0' 행정부 교과서 '프로젝트 2025'에는 뭐가 담겼나?

‘리더십의 사명’이라는 제목이 붙은 헤리티지 재단의 대통령 집권 프로젝트 보고서. 트럼프의 재집권을 위해 쓰인 ‘2025 프로젝트’ 보고서는 92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대략 1500~1700개로 추정되는 미국 싱크탱크 중에서 쌍벽을 이루는 것은 보수성향의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과 진보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다. 헤리티지·브루킹스는 랜드(RAND)연구소와 함께 미국이 자랑하는 3대 싱크탱크로 꼽힌다. 헤리티지는 지난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집권 당시부터 '리더십의 사명(Mandate for Leadership·MfL)'이라는 제목을 붙인 대통령 집권 프로젝트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레이건 집권 후 MfL 권고사항의 60% 이상이 정책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트럼프 2.0' 행정부 교과서 '프로젝트 2025'에는 뭐가 담겼나?
헤리티지는 공화당 유력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해서도 이미 지난해 4월 '2025 프로젝트' 보고서를 만든 바 있다. 2025년 트럼프 재집권을 위해 작성된 이 보고서의 최신 버전은 △제1부: 행정부 고삐 채우기(Taking the Reins of Government) △제2부: 공동 방위 △제3부: 일반 복지 △제4부: 경제 △제5부: 개별 규제기관 등 총 5부(Section)로 구성되어 있다.
'트럼프 2.0' 행정부 교과서 '프로젝트 2025'에는 뭐가 담겼나?
현재 미 공화당 경선 레이스는 당초 트럼프의 강력한 대항마로 간주되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중도 사퇴함에 따라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유일한 경쟁 후보로 남아 있다. 하지만 헤일리가 트럼프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시나리오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트럼프 2.0' 행정부 교과서 '프로젝트 2025'에는 뭐가 담겼나?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트럼프 2.0 행정부'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2.0 시대에 우리에게 닥칠 도전과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려 920쪽에 달하는 헤리티지재단의 '2025 프로젝트' 보고서를 미리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트럼프 2.0 시대를 대비하기 위하여 가장 기초적으로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 주요 내용을 필자의 시각을 담아 정리해 본다.
이 보고서의 서문 제목은 '미국에 대한 약속'이다. 서문은 "오늘날 미국과 보수주의 운동이 1970년대 후반과 유사한 분열·위험의 시대에 직면했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된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 미국의 정치계급은 총체적 부정·부패로 불신을 받고 있다. 민생을 황폐화시키는 인플레이션, 약물(펜타닐 등)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 학교에까지 침입한 포르노 등으로 미국은 피폐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중국의 전체주의 독재정권이 미국의 이익·가치·국민에 대항하는 전략적·문화적·경제적 냉전을 선포한 상태다. 또 저소득층의 정부 의존도는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공화당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해야 할지 거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MfL이 밝힌 이런 핵심 문제의식에 따라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4개의 주요 권고안은 다음과 같이 제시돼 있다. ①미국 생활의 중심인 가족을 회복하고 자녀들을 보호 ②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를 해체하고 국민에게 자치권을 반환 ③전 세계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주권·국경·영토 수호 ④헌법이 '자유의 축복(the Blessings of Liverty)'이라고 부르는 개인의 자유 보장.
지난 1월 24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 후보 경선 유세에 참석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photo 뉴시스
'윌슨주의적 오만이 암세포처럼 퍼져 있다'
특히 ③번에서 MfL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적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대외문제에서의 적극 개입을 주창해온 윌슨주의를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MfL이 민주당 진보 엘리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개방성, 진보, 전문성, 협력, 세계화 같은 고상한 용어"에 혐오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주장하는 트럼프 같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비난할 때 '글로벌리스트(globalist)'라고 부른다. MfL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대목이 등장한다. "미국의 대기업·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경멸하는 '시골 깡촌(fly-over country)'의 겸손하고 애국적인 노동자 가족보다는 계몽된 고학력 엘리트들이 나라를 운영하는 일종의 21세기 윌슨주의적 질서를 믿는다. 이러한 윌슨주의적 오만이 미국의 많은 대기업·공공기관·대중문화에 암세포처럼 퍼져 있다.…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은 유엔이나 유럽연합 같은 초국가적 조직을 열렬히 지지한다." 한마디로 트럼프 2.0 시대는 유엔 같은 국제기구와 글로벌리스트를 철저히 배격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진보 엘리트가 추진하는 경제 세계화에 대한 MfL의 거부감은 중국공산당(CCP)에 대한 적개심으로 구체화된다. MfL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세계화를 추진한 결과, CCP의 배만 불리고 미국의 산업기반은 초토화되었다. 소수의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도 미국 국민들의 필요와 동떨어진 사업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장면은 CCP와 '빅테크(실리콘밸리의 첨단 대기업)'를 한통속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MfL이 보기에 CCP·빅테크는 미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데 앞장서는 일종의 '공범' 이다. MfL에 의하면 CCP는 미국 시장 진출과 지식재산권 도둑질로 얻은 수조 달러의 부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첨단기술 절취, 미국인 감시, 동맹국 위협 등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빅테크는 이제 미국 경제에 기여하기보다는 중국 정부의 도구로 전락했다. 미국의 빅테크들은 중국의 값싼 노동력과 규제 특혜를 받는 대가로 미국인 데이터를 CCP에 넘기고 있다.
빅테크·CCP 협력의 위험은 '틱톡'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MfL에 따르면 매달 8000만명의 미국인이 사용하고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압도적 인기를 누리는 중독성 강한 동영상 앱이 사실상 중국 스파이 활동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CCP는 공자학원을 앞세워 미국 기업과 미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에 막강한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 ‘2025 프로젝트’ 보고서는 북한을 ‘North Korea’가 아닌 ‘DPRK’로 기재해 눈길을 끌었다. photo 뉴시스
'중국과의 경제관계는 종료되어야 한다'
중국 이슈와 관련해 MfL은 2가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적시한다. 첫째,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 혹은 공정한 경쟁자가 아니라 미국의 전체주의 적대국(a totalitarian enemy)이다. 둘째, 미국 엘리트들이 미국 국민을 배신했다. 그러므로 중국과 경제관계는 "재검토가 아니라 종료"되어야 한다. 공자학원, 틱톡, 중국의 선전선동, 스파이 활동은 단순한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불법화 대상이 되어야 한다. CCP로부터 돈을 받는 대학에 대해서는 인·허가 취소, 설립 근거 박탈, 연방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 같은 '극약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③번 사항과 관련된 MfL의 입장이다.
다음으로 ④번에서 MfL은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오늘날 미국은 '문화전쟁'을 앞세워 사실상의 내전상태로 치닫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그 핵심이 '워키즘(wokeism)'이다. 이는 좌파·진보계층이 환경보존·녹색성장·인종차별철폐·LGBTQ·페미니즘 같은 첨예한 이념적·사회적 이슈를 독점하면서, 자신들만 '올바르다'고 믿는 좌파주의적 위선·독선·무관용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는 신조어다. 좌파들은 이러한 자기확신적 주장들을 가리켜 미국인의 도덕적 타락과 지적 열등감을 증명하는 징후라고 말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상향 이동성이 높은 사회다. 따라서 트럼프 2.0 시대에는 자신의 선호를 국민의 선호로 대체하려는 좌파들의 시도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MfL은 한반도의 야경을 찍은 위성사진도 강조한다.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남한은 주택·기업·도시 곳곳에 전기가 들어와 야간에도 불이 켜져 환하지만, 공산주의 북한은 "정신병자 독재자와 그의 측근들이 살고 있는 수도 평양의 작은 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다"는 것이다.
MfL 보고서 중에서 국방부와 관련된 부문은 크리스토퍼 밀러(Christopher Miller)가 작성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DZYNE 테크놀러지스'라는 회사의 최고수익책임자(CRO)로 재직 중이다. 2020년 10월 캘리포니아에 설립된 DZYNE는 인공지능(AI) 기반 자율항공기 전문 기업으로 자율주행차, 상용·군용 항공우주 분야, 자동차, 복합소재 기체 등에 관여하고 있다. 밀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종료를 불과 2개월 앞둔 2020년 11월 10일 국방장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보수성향의 라디오 호스트(휴 휴잇)와의 대담을 인용한 폴리티코 보도에 의하면, 트럼프는 이번에 대통령에 재선되면 국방장관으로 크리스토퍼 밀러의 발탁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차기 유력한 국방장관 후보로 평가되는 밀러가 MfL의 '국방부' 분야를 집필한 것이 그래서 주목된다. MfL에 의하면, 국방부(DOD)는 연방정부에서 가장 큰 조직이다. 전 세계에서 약 300만명이 군인·민간인 신분으로 군에 복무하고 있으며, 정부 재량지출의 절반이 넘는 연간 약 8500억 달러를 지출한다. 그런데 MfL는 국방부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deeply troubled) 기관"이 되었다고 날을 세웠다. 역사적으로 군대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관 중 하나였지만, 수년간의 지속적 과용(불필요 분쟁에 파병 등), 이중적 책임성(하급 병사들에 엄격, 고급 장교들에 관대), 낭비적 지출(국방비 남용), 변덕스러운 안보 정책, 열악한 규율, 백신접종 의무화 등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아프간에서의 비참한 철수, 믿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중국 전략, 고위 장교들의 정치 참여 증가, 군의 목적을 둘러싼 혼란 등은 미국의 능력·의지가 불안하게 쇠퇴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이자 위험한 쇠락의 징표이다. 또한 전쟁의 성격이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술의 민주화와 시간·공간의 붕괴는 방어·억제·전투방식에 드라마틱하고 사려 깊은 변화를 요구한다.
‘2025 프로젝트’ 보고서의 국방 부문을 작성한 크리스토퍼 밀러 전 미 국방장관. 트럼프 재집권 시 다시 국방장관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hoto 뉴시스
기술 민주화가 부른 군사력 민주화에 주목
흥미롭게도 MfL은 '기술의 민주화(democratizaton of technology)'에 주목했다. 유사한 맥락에서 포린어페어스(FA)도 2022년 8월'어떻게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재구성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벌어지는 '군사력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Military Power)'라는 주제를 다룬 바 있다. FA에 의하면 헤르손 탈환 같은 우크라이나의 놀라운 군사적 승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 전장상황에서 기존의 능력을 적응·극대화시키는 창의력이다. 일례로 우크라이나군은 공중배회 탄약(loitering munitions), 상업용 드론, 스타 링크 등의 결합으로 러시아 군대·장비를 격파했다. 특히 AI를 위성 이미지에 적용하여 포병화력이 표적을 효율적이면서도 정확히 포착·조준·격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및 활용했다. 기술의 작동원리가 쉬웠던 덕분에 군사훈련을 거의 받지 않은 군인과 일반 민간인들이 실제 전투에 동참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례는 전투·전쟁의 범위가 물리적 전장과 전통적 군대 및 국가 행위자를 넘어서는 영역으로 확장됨에 따라 일반 시민, 민간 기업 및 민간 기관들이 전쟁에 동참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는 전쟁의 새로운 추세, 즉 '군사력의 민주화'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이와 관련 FA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자체를 민주화하여 우크라이나 자신의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21세기 전쟁의 새로운 선례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MfL이 국방분야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한 것은 국방정책, 국방개혁, 핵억제력 및 미사일방어다. 먼저 국방정책의 포커스는 중국이다. 중국군이 제기하는 가장 심각한 위협은 서태평양의 제1도련선에 위치한 대만과 다른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것이다. 중국이 한국·일본·대만·필리핀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면 중국의 아시아 패권 장악을 막기 위한 균형동맹이 붕괴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부방어(a denial defense)'가 필요하다. 이 전략의 핵심은 주둔미군·동맹국 및 전략적 자원 배분의 조합을 통해 중국의 역내 패권장악 시도를 억제·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MfL은 "대만이나 아시아 내 여타 동맹국들의 복종(중국에 의한)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능력, 즉 거부방어가 필요"함을 전제로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대목을 포함시켰다. "중요한 것은 중국·미국에 대한 대만의 상대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과 위험(at a level of cost and risk that Americans are willing to bear)으로 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개입·방어전략은 잠재적 비용·위험을 감수하려는 미국 대중의 의지를 무시하고서는 추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포인트다. 만일 미국 국민이 비용·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아무리 대중국 억제와 동맹국 보호가 미국에 중요하더라도 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과 위험'은 객관적 측정의 대상이 아니라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다. 그 시점에 미 행정부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국제적 환경, 그리고 대중의 여론 등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말이다.
동맹국 보호에도 '비용과 위험을 고려해야'
다음으로 MfL은 국방개혁에 높은 우선순위를 매겼다. 국방개혁의 초점은 거부방어, 동맹국의 방위분담 확대, 핵전력 현대화·확장 등이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것은 당연히 동맹국의 재래식 방위비분담(burden-sharing) 확대이다. MfL에 따르면 미국 동맹국들은 재래식 방어에서 훨씬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방위비분담은 미국 국방전략의 핵심으로, 미국은 동맹국들이 방위비분담을 '늘리도록(step up)' 도울 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이 그렇게 하도록 '강력히 장려'해야 한다. 또한 대만·일본·호주 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이 집단방위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출과 협력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우리로서는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주도(take the lead in its conventional defense against North Korea)'할 수 있도록 한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이 같은 내용에서는 다음 두 가지가 추론된다. 첫째, 거부방어 전략과 방위비분담 증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상기 전략은 트럼프 2.0 시대에 방위비분담 대폭적 증액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둘째, 대만 방어와 관련하여 '집단방위 모델'을 언급했는데 이를 위해 트럼프 2.0 시대에는 군사비 지출, 연합훈련, 정보공유, 자체 방위역량 강화를 주문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상기 요소들이 보완·업그레이드된 집단방위 모델은 '아시아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진화될 수도 있다.
국방개혁의 세 번째 초점은 핵전력 현대화·확장이다. MfL에 의하면 핵무기를 현대화·개조·확장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대규모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를 적극 휘두르고 있으며, 중국도 역사적 스케일의 핵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핵무기를 확장·현대화하여 중국·러시아를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규모·정교함·맞춤성(tailoring)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심각한 핵강압에 노출되지 않도록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향후 미국·중국·러시아 간 본격적인 핵군비 증강 움직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다음으로 핵억제력이다. "미국 군사력의 백스톱을 형성(forms a backstop to U.S. military forces)"하는 핵전력은 국가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백스톱'은 흔히 야구 경기장에서 홈 플레이트 뒤편에서 볼 수 있는 벽이나 울타리(철망)를 말한다. 그래서 '최종 수비'에 비유되기도 한다. 미국의 모든 군사적 작전계획은 핵 억제력이 '백스톱'으로 유지된다는 암묵적 가정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2개 핵 경쟁국(중국과 러시아)을 동시에 억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밖에 북한도 핵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고, 이란은 핵무기 획득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당면과제는 핵전력 현대화이다. 여기에는 △핵 3원전력(nuclear triad) 유지를 위한 센티널 미사일, 장거리지대공무기(LRSO), 컬럼비아급 탄도미사일잠수함, B-21 폭격기, F-35 이중탑재 항공기 등 핵심 현대화 프로그램의 일정 단축 △미니트맨 Ⅲ ICBM 핵전력의 수명연장을 추진하려는 의회의 모든 제안 거부 △B61-12, W80-4, W87-1 Mod, W88 Alt 370을 포함한 핵탄두 수명연장 프로그램(LEP)에 대한 충분한 자금 확보 △바이든 행정부가 포기한 해상발사 핵순항미사일(SLCM-N) 개발 등이 포함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2022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핵억제력의 복원·유지를 위한 권고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아시아판 NATO와 군비경쟁 예고
끝으로 미사일방어(Missile Defense·MD)다. MfL에 의하면 MD는 국가안보 구조의 중요 구성요소다. MD는 공격이 의도한 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자극하여 적대국의 '싸구려 공격(cheap shot)'을 차단한다. 그럼에도 MfL은 MD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가 최근 수년간 낮아지고, 자금 부족에 시달린다고 지적한다. MfL은 MD의 장점을 옹호하며, 미국의 MD 체계가 중·러의 '2차타격 능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전략적 불안정성을 초래한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일축한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 2.0 행정부는 일종의 딜레마를 만나게 될 전망이다. MD 능력의 첨단화·고도화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중·러)의 우려와 공포심을 자극하여 MD 체계를 무력화·우회하는 새로운 첨단무기 개발에 나서게 할 것이고, 이처럼 새로이 제기되는 문제는 미국 MD의 추가적 보강·업그레이드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안보 딜레마'에 처한 국가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딜레마다.
미국의 MD 강화·보강·업그레이드를 요구하는 MfL의 논리는 새로운 군비경쟁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은 현재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본토 방어를 위해 지상기반미사일방어(GMD) 체계의 일환으로 44기의 지상기반요격미사일(GBI)을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선함에 따라 이것이 북한 위협에 뒤처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에 따라 MfL은 미국이 GBI보다 더 나은 차세대 요격미사일(NGI)을 최소 64기 이상 구매해야 함을 강조한다. 나아가 순항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변칙적인 비탄도 궤도(nonballistic trajectories)를 비행하는 미사일을 탐지·추적하기 위한 우주기반 센서배치 프로그램 가속화, 극초음속 무기 대응을 위한 활공단계요격체(Glide Phase Interceptor) 개발 가속화 등도 제시했다.
MfL는 전 세계가 불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북한 등 5개국을 차기 행정부가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북한일 수밖에 없지만 MfL이 언급한 북한 관련 사항은 무성의할 정도로 짤막하다. MfL은 동북아 평화·안정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라고 강조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지적한다. 양국은 필수 불가결한 군사·경제·외교·기술 파트너로 북한(DPRK)과의 군사적 충돌은 억제되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이나 그 동맹국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이는 미 본토 방어와 글로벌 비확산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국제적 약속을 노골적으로 위반하여 이익을 얻거나 핵협박으로 다른 국가를 위협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정도가 MfL이 북한 이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대만 사태 때 한반도 최고 위기
필자가 보기에 MfL이 '국무부' 사항에서 5대 관심대상국으로 중국-이란-베네수엘라-러시아-북한을 거론한 순서도 특이하다. 의도적이 아니더라도 우선순위가 매겨진 듯한 뉘앙스도 감지된다. 만일 그렇다면 트럼프 2.0 행정부에서 북핵문제는 대외정책의 후순위에 놓일 공산이 높다. 그나마 유의미한 정책방향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MfL이 '국무부' 관련 내용에서 북한을 'North Korea'가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으로 부르며 깍듯이 예의를 갖춘 대목이 꺼림직하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일상적 핵공갈·핵위협, 미사일을 포함한 온갖 '발사체'들의 시험 발사, 러시아와 무기·탄약과 첨단 군사기술을 맞교환할 가능성, 대한민국을 겨냥한 위험한 협박성 언사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북한 비핵화' 또는 '완전한 비핵화', 그리고 북핵 위협에 대응하여 한국에 약속한 핵우산·확장억제와 관련된 부분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북한 도발의 억제 필요성,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불인정, 글로벌 비확산 등은 공허한 레토릭처럼 들린다. 동북아에 '사활적' 중요성을 부여하였지만, 한국·일본 같은 동맹국 보호를 위한 의지나 각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더 큰 문제는 '국방부' 관련 사항이 중국을 '최대 위험'으로 지목하고, 이에 대응하여 '거부방어' 전략을 제시한 점일 것이다. 거부방어의 무게중심은 제1도련선과 대만이다. 대만·한반도에서 우발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MfL은 대만에 우선순위가 놓일 것임을 암시했다. 따라서 대만 유사시는 우리에게 최대 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동맹국 보호와 관련하여 "감당 가능한 수준의 비용·위험"을 강조한 것도 문제다. 그 기준은 가변적·자의적·주관적이다. 동맹국에 제공하는 안보 공약에 이를 적용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요컨대 트럼프 2.0 시대에는 확장억제를 포함한 모든 안보 공약의 신뢰성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처럼 안보 공약이 희석되는 반면에, 방위비분담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트럼프 2.0 행정부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를 주도하도록 요구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북핵 문제'를 이유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연기해 온 관행도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MfL은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 촉발된 '문화전쟁'의 여파로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은 사실상의 내전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내부 분열이 심화될수록 대외정책의 추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제 무질서(International Disorder)' 시대를 예고하며 국제관계론에서 말하는 '무정부 상태'를 가리킨다. '무정부 상태'에 놓인 주권국들이 택해야 할 제1의 과제는 '자조(self-help)'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2024년부터 바야흐로 21세기 각자도생의 시대가 활짝 열릴 조짐이다.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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