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신규 인력 86%가 외국인인데… 또 3000명 수혈

조선업 신규 인력 86%가 외국인인데… 또 3000명 수혈

고질적 인력난에 외국인 의존 심화


지난 13일 우리나라 조선 업계의 ‘VIP’가 조용히 서울을 찾았다. 피팟 라차킷프라칸 태국 노동부 장관이다. 조선사의 최대 고객인 선주 자격도 아닌 그는 서울 한 호텔에 방문해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 관계자를 한자리에서 만났다. 이날 만남의 핵심은 용접공, 전기 설비 기술자, 페인트 스프레이 작업 인원 등 태국 근로자 3000명을 추가로 한국에 보내는 데 협력하자는 양해각서 체결이었다.

그래픽=김현국

만성 인력 적자에 시달리는 국내 조선 업계는 외국인 전문 인력(E-7) 비자 발급 지침이 개정되자 2022년 말 태국 출신 숙련 용접공 10명을 데려왔다. 이후 조선소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작년 1~3분기 조선업 신규 채용 약 1만4000명 중 1만2000여 명이 외국인이었다. 그중 태국 출신 근로자들의 평이 특히 좋다고 한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온 근로자들은 자기 일이 끝나도 동료가 일을 잘 못하고 있으면 먼저 나서서 돕는다. 근로 태도가 특히 성실하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국내 주요 조선사들이 올해도 여전한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태국 근로자 수천명을 비롯해 외국인 채용 확대에 나선다. 조선 업황이 10년 만에 호황을 맞았으나 용접공 등 기술 인력이 부족한 국내 업계 상황과 높은 임금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를 찾는 동남아 근로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았다. 이들 지역에선 정부가 나서 숙련 용접공, 전기 설비 기술자 등을 한국에 보내고 있다. 한국 산업 현장에 용접공 등으로 취업하면 현지 약 5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기술 노하우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에선 작년 취업 비자 완화 등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대거 채용하면서 ‘납기 지연’ 등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조선업 불황 때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등으로 떠난 숙련 용접공들은 돌아오지 않아 덜 숙련된 외국인 기술자들이 자리를 채우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조선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작년 조선업 신규 인력 86%가 외국인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1~3분기 조선 업계 신규 고용은 1만4359명이었다. 이 중 기능 인력(E-7·6966명), 비전문 인력(E-9·5373명) 비자를 가진 외국인 근로자가 전체 86%를 차지했다. 국내 인력은 2020명에 그쳤다. 조선업의 심각한 인력난 탓에 정부가 2022년 2000명 수준이던 외국인 숙련 기능 인력 쿼터를 3만명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고, 비자 취득 요건도 완화한 결과다.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태국인 근로자들이 전담 코디네이터에게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한화오션

현재 국내 조선 업계 전체 근로자 9만3000여 명 중 약 1만5500명(16%)이 외국인 근로자다. 외국인 비율이 크게 늘면서 이들에 대한 관리 중요도도 커졌다. HD현대중공업은 사내 협력사가 채용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도 정기 기량 진단 및 보수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취부·용접에 대해서는 자격 관리 시험도 강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달 3일과 5일에는 베트남 하노이와 응에안에서 ‘E-7 근로자 가족 초청 행사’를 개최, HD현대 조선 계열사 및 협력사에서 근무 중인 베트남 출신 숙련공의 가족 400명을 호텔로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용접 작업을 할 때 지켜야 할 10가지 필수 준수 사항을 픽토그램(그림문자)으로 제작해 영어, 네팔어, 미얀마어 등 8개국어로 번역하고 설명까지 덧붙여 작업 현장 곳곳에 비치했다. 용접공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기초적인 내용이지만, 선박 건조 물량이 늘면서 외국인을 포함한 신규 용접 기술자들의 현장 투입이 증가한 영향이다.

◇숙련공·장기 경쟁력 확보가 관건

장기적으로 숙련공 부족 등 조선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도 크다. 작년 비자 완화를 통해 숙련공 자격으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 중 일부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작업에 익숙해진 외국인 근로자의 이탈 우려도 있다. 모국 대비 높은 임금수준이지만, 보유한 용접 등 기술을 써먹을 수 있는 다른 고임금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실제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조선소 외국인 근로자가 불법체류 신분을 감수하고 단체로 건설 현장 일용직 등으로 무단 이탈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작년 금속노조가 국내 조선소에서 일하는 외국인 410명(10국)을 설문조사한 결과, 63.7%는 기회가 된다면 조선소가 아닌 사업장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아서(67.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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