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걷기 논란] 걷기길 날림 조성에 "의학적 효능 없다" 지적도

[맨발걷기 논란] 걷기길 날림 조성에

맨발걷기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유행하고 있다. 사진 이신영 기자.
지난해부터 급격히 유행하고 있는 맨발걷기 열풍에 따른 후폭풍으로 황톳길이 난립하고, 맨발걷기에 유사과학적인 요소가 있다고 우려하는 여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맨발걷기는 2000년대를 전후로 '발은 제2의 심장'이라는 말과 더불어 대두된 운동이다. 이후 조금씩 입소문을 타다가 지난해 여름 KBS 인기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맨발걷기의 효능에 대해 다루면서 급속히 동호인 수가 늘고 있다.

맨발걷기는 문자 그대로 맨발로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걷는 곳은 도시공원의 숲길이나 해변 모래사장, 완만한 등산로다.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에 지압효과가 더 뛰어나 상대적으로 더 많은 스트레스 지수 감소, 혈액순환 향상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이처럼 맨발걷기가 인기를 끄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크다. 첫 번째는 입소문. 맨발걷기를 시작하고 나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증언이 많다. 고혈압·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은 물론 심지어 암이 낫고 비염, 배뇨장애까지 해결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돈다. 인터넷 상의 낭설이 아니라 실제 주변인들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맨발걷기를 시작한 사람도 적지 않다.

두 번째는 비용이 없다는 점이다. 딱히 무엇을 살 필요가 없다. 집 근처 하천변이나 공원에서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교통비도 들지 않는다. 그러니 '밑져도 본전'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문할 수 있다.

맨발걷기 인구가 늘자 지자체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각 시에선 긴급히 예산을 투입해 맨발걷기길을 조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맨발걷기길 조성과 정비를 골자로 한 조례안을 재빠르게 제정한 지자체도 많다.

지자체가 기민하게 반응하는 건 재정투입 대비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예산을 조금만 써도 충분하다. 경남지역 지자체 공원녹지과의 한 직원은 "등산로 정비의 경우 자재를 산중에 조달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돈이 상당히 많이 들지만, 맨발걷기길은 간단히 말해 흙을 구매해 붓기만 하면 된다"며 "고령층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보통 접근성이 좋은 곳에 조성된다는 점 등 때문에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도권 산림녹지과의 한 직원은 "최근에는 맨발걷기하는 사람들이 모임 형태를 이룬다"며 "그렇기 때문에 민원이 조직적이며, 반복적이고, 다수로 접수되기 때문에 일선 공무원들이 일단 최대한 들어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맨발걷기꾼들의 유입이 많아지면서 민폐 논란이 일었던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 전경.
비에 쓸려나가고 진창 되기 일쑤

물론 '흙 몇 백만 원 어치를 사서 쏟아 붓기만 하면 된다'는 수준으로 안일하게 공사해선 안 된다. 황톳길은 비가 올 시 유실되는 토사량이 매우 많다는 특성이 있어 횡단배수로를 적절히 설치해야 하고, 너무 경사진 곳도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유실되는 황토를 주기적으로 계속 채워 넣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대전 계족산 황톳길은 매년 약 10억 원 이상이 유지 관리비로 소요되고 있다.

하지만 맨발걷기길이 전국적으로 수백 곳 넘게 난립되고 있는 만큼 모든 길이 충분히 검토한 후 만들어지고 있진 못하다. 조달청 나라장터에서는 최근 6개월 공사 발주를 낸 맨발걷기길 관련 사업만 전국적으로 50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 이에 일부 맨발걷기길에 대해 졸속, 전시행정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포천시 장터 옆 하천변에 조성된 걷기길은 상습 침수로 토사가 유실되기 쉬운 곳에 만들어진 탓에 약하게 내린 가을비에도 상당수의 흙이 쓸려나갔다. 광주 용봉저수지 둘레길에도 맨발걷기길이 만들어졌으나 주변이 습지다 보니 금방 길이 질퍽해져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바로 옆 야자매트길까지 진흙이 넘어오면서 맨발로 걷지 않는 이들도 불만을 표했다.

심지어 맨발걷기길이 아닌 곳을 맨발로 걸으면서 민폐 논란도 불거졌다.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의 경우 공원에서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염생식물 군락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서울 보라매공원에서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흙을 밟으려고 계단이나 데크로 된 주 산책로를 벗어나 샛길에 출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곳곳에 폐쇄 표지판이 붙었다.

게다가 맨발걷기의 효능을 지지하는 논리 중 하나가 유사과학이라는 지적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맨발걷기가 몸에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대로 지압효과며 이에 대해 크게 이의를 꺼내는 이는 없다.

문제는 두 번째 이유인 접지, 어싱Earthing이다. 맨발걷기를 아예 '어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미국 심장 전문의 스티븐 시나트라 박사가 저술한 동명의 책 <어싱>에서 제시한 가설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땅에 맨살을 대면 지구의 음전하가 몸 안으로 들어와 체내에 양전하를 띤 활성산소를 소멸시켜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논리다.

음전하를 띤 이온이 곧 음이온인데 최근 음이온에 대한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지난 2018년 음이온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을 방출하는 라돈이 검출된 사건 탓이다. 2019년 7월에는 신체 밀착 제품에 음이온을 활용한 마케팅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런 탓에 어싱 효과를 유사과학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도 플라시보와 지압 정도를 뺀 나머지 맨발걷기 효과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본다. 특히 아프리카 마사이족이 맨발로 살기 때문에 성인병 발병 위험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마사이족의 평균 수명은 40년 정도"라고 일갈한 사례가 유명하다.

또한 맨발걷기 열풍에 힘입어 어싱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제품들이 지난 겨울에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의혹도 추가되는 양상이다. 어싱 제품을 팔기 위한 바이럴 마케팅이 맨발걷기 열풍을 조장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확인되는 황톳길 조성사업 관련 계획.
"음이온 효과는 가설일 뿐"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들도 이런 부정적 여론을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 "직접 효과를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여론"이라거나 "어쨌든 나는 효과를 보고 있는데 혐오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수도권 맨발걷기학교의 한 관계자는 "맨발걷기가 효과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음이온인 것은 맞지만 단지 가설이며, 이 가설은 모두 어찌됐건 맨발로 걸어 건강이 크게 회복된 사람이 많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민원 문제에 대해선 "흙을 밟기 어려운 현대 도시인들에게 흙길을 조금 내어주길 청하는 것뿐인데 전부 악성 민원인 것처럼 치부되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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