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 “해부학 시신 1구에 30명” vs 정부 “본과진학땐 확충 끝나” 끝없는 평행선

의대교수 “해부학 시신 1구에 30명” vs 정부 “본과진학땐 확충 끝나” 끝없는 평행선

집단휴학 지방의대 가보니
학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텅 빈 충북대 의대 해부학 실습실. 청주=양회성 기자 [email protected]
15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의과대학 본관 4층 ‘첨단·안전 환경 해부학 실습실’. 철제 실습대 10개가 놓여 있었고 벽과 천장에는 모니터와 수술등이 매달려 있었다. 해부학은 생리학과 함께 의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과목 중 하나다. 본과 1학년 학생들은 인체 해부를 배우기 위해 6~8명씩 조를 짜고 카데바(해부용 시신)를 실습한다. 교수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학생들은 실습실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과 개별 모니터를 보고 따라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날은 학생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 휴학계를 내고 나오지 않아 새 학기 수강생으로 붐벼야 할 실습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충북대 의대 관계자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조별 인원이 3~4배 이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겉핥기 실습’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실습용 시신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정원만 늘리면 카데바 한 구당 학생 30~40명이 실습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14, 15일 현 입학 정원의 2배 이상 증원을 신청한 거점 국립대인 충북대와 부산대를 찾아 의대 교육 현장을 살펴봤다. 4일 교육부에 제출한 의대 증원 신청서에 충북대는 현 정원 49명에서 250명으로, 부산대는 125명에서 250명으로 늘려 달라고 했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급격하게 증원을 하면 실습 여건이 나빠져 일부 학생은 구경만 하는 ‘관광 실습’이 될 것”이라며 “1980년대식 교육은 가능하겠지만 미래지향적인 교육은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교육의 질’ 저하 우려에 대해 “증원을 해도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것으로 이미 확인했다”며 “분반 수업과 교과과정 조정 등으로 부족한 교육 인프라를 확충할 시간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醫 “실습 아닌 관광 될 판” vs 校·政 “예과 지금도 수용 가능”
14일 오후 경남 양산시 부산대 의대 캠퍼스. 지난달 19일 개강했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재학생(590명) 98%가량이 휴학계를 내고 등교하지 않고 있다. 의대 3층엔 20여 개의 소형 강의실이 있다. 병원 진료실만 한 크기로 7, 8명이 앉으면 꽉 차는 공간이다. 주로 본과 1, 2학년생들의 소규모 토론 수업(프로젝트 기반학습·PBL)에 쓰인다. 소화기내과 수업에선 ‘49세 여성 환자가 복통으로 내원했다’ 등 가상 사례를 놓고 병력 확인부터 처방까지 학생들이 모의 진료를 한다. 교수는 학생이 환자에게 필요한 질문을 제대로 했는지, 필요한 검사를 빠트리진 않았는지, 처방이 적절한지 등을 꼼꼼히 조언한다. 오세옥 부산대 의대 교수협의회장(해부학 교수)은 “(현재 125명인 의대) 정원이 200명으로 늘었을 때 지금처럼 PBL 수업을 진행할 교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의대 교수들 “6~8명이 하던 실습 20~30명이 해야”

현재 정원 50명 미만인 지방 국립대들에 대규모 증원이 진행되면 이런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충북대는 4일 교육부에 제출한 의대 증원 신청서에 현재 49명인 정원을 250명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전국 40곳 의대 중 희망 증원의 폭이 가장 크다. 정부가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 의대 정원을 200명가량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에 따라 충북대 의대 정원이 4배가량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배장환 충북대 의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심장내과 교수)은 “정원이 200명으로 늘어나면 실습 시설도 4배로 확충돼야 한다”며 “갑작스레 정원을 크게 늘리면 6~8명이 하던 실습을 20~30명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생은 생물학, 유전학, 생화학 등 기초 교양 위주인 의예과 1, 2학년을 마치면 3년차인 본과부터 본격적으로 기초의학 교육을 받는다. 최근에는 대형 강의도 작은 그룹으로 나눠 실험과 실습 위주로 운영된다. 의대 교수들은 의대 증원이 급격히 늘어날 경우 단기간에 실습 시설 등을 확충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본과 3학년부터 시작되는 병원 실습도 상황은 비슷하다. 14일 방문한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엔 본원 안에 의대 실습생을 위한 공간이 없어 길 건너 건물 5층의 절반을 실습준비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본과 3, 4학년 250명이 쓸 개인사물함도 부족해 일부 학생들은 가운 등을 강의실 한쪽에 쌓아두고 있다.

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선 병원 내에 술기(수술 기법) 등을 연습할 시뮬레이션 센터가 있어야 하지만 상당수 병원엔 이런 공간이 없다. 전자의무기록(EMR)을 보고 환자 사례를 공부해야 하는데, 실습생에게 할당된 공간이 없어 간호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틈틈이 차트를 열람한다. 신용범 부산대병원 교육연구실장(재활의학과 교수)은 “학생들이 다양한 환자 사례를 익히기 위해 진료를 참관하는데, 정원이 200명으로 늘어나면 교수와 입원 및 외래 환자도 그만큼 늘어야 한다”며 “정부가 국립대병원을 아무리 키운다고 해도 그만한 실습 환경을 갖추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정부-대학 “2027년까지 교육 인프라 확충”

의대 증원을 희망하는 대학 본부와 정부는 내년도 입학생이 본과에 들어가는 2027년까지는 교육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대 1, 2년차인 예과에선 실습 과정이 많지 않아 기존 대학 자원을 활용해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지방 거점 국립대 교수를 늘리면 교수 부족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거점 국립대들은 정부 지원을 근거로 두 배 이상의 증원을 희망하고 있다. 정원을 현 49명에서 140명으로 늘리기를 희망하는 강원대 김현영 총장은 “예과 학생들이 수업할 강의실 등은 기존 학교 시설을 활용해 마련할 수 있다”며 “증원된 학생들이 본과로 올라가기 전까지 시간을 갖고 실습 시설 등을 더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원대는 2028년까지 의학계열 학생들이 쓸 건물을 신설할 계획이다. 부산대 관계자는 “정부에서 시설 확충 비용이나 교수 정원을 늘려주면 200명까지는 증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대규모 증원을 감당할 만큼의 교수 수급이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 “기초의학 교수가 부족한 것은 맞다”면서도 “생명공학 등 일부 분야는 이공계 교수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병원 실습 환경 확충은 내년도 입학생이 본과 3년생이 돼 병원에서 교육받는 2029년 전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본과생 실습병원을 각 의대의 수련병원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도 실습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라며 “수련병원 규모가 작은 의대생들도 다른 병원에서 충분한 실습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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