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식업계에 베트남은 기회의 땅?[가깝고도 먼 아세안](25)

한국 외식업계에 베트남은 기회의 땅?[가깝고도 먼 아세안](25)

호찌민 핵심 상권인 하이바쯩 거리의 상가 모습. 건물들의 폭이 좁고 높다. /유영국베트남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외식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자영업자부터 유명 기업형 프랜차이즈 식당까지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벗어나 베트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외식업계 경험이 미천하지만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분들에게 성공적인 진출을 위한 작은 의견을 드리고자 한다.
한국 외식업계에 베트남은 기회의 땅?[가깝고도 먼 아세안](25)
베트남으로 외식업계 시장조사를 하러 온 분들은 당연하게도 베트남에서 인기가 많다는 한국 식당들을 먼저 찾아간다. 손님이 북적이는 몇몇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보고는 한껏 고무돼 자신감 넘치게 ‘이 정도 수준의 맛이라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십수 년간 베트남을 찾은 수많은 외식업계 관계자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베트남에 진출할 때 쉽게 빠지는 함정 중의 하나가 문제점을 쉽게 파악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외국인으로서 그 해결책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 외식업계에 베트남은 기회의 땅?[가깝고도 먼 아세안](25)
■누구나 하는 쉬운 생각, 실패의 지름길
한국 외식업계에 베트남은 기회의 땅?[가깝고도 먼 아세안](25)
보통 베트남에 진출하는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베트남 거주 한국인들이나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안정화되면 점차 베트남 현지인 고객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베트남 주요 관광지와 한국인 밀집 거주 지역에는 수많은 한국 식당이 진출해 있다. 치열한 경쟁에 속절없이 폐업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폐업하는 주요 원인은 신규로 진출한 식당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인 경우가 많다. 탄탄한 자본력으로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 쏟아내는 장기적인 전략이 아닌 일시적인 할인 행사이다 보니 가격이 정상화되면 고객들은 곧바로 떠난다.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음에도 새로운 식당이 들어설 때마다 가격 경쟁에 시달리는 기존 식당들 역시 못 견디고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
가격이 아닌 맛으로 경쟁하려는 업체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우선, 물과 식자재가 한국과 다른 베트남에서 한국에서의 맛 그대로 구현해 내기가 어렵다. 또한 한국인 주인이 직접 조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국인 조리사를 고용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파견을 하면 주거비에 해외 체류비 및 비자를 비롯한 각종 인허가 비용까지 한국에서 인건비의 2~3배가 소요된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한국 주방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베트남인 조리사를 찾거나 새롭게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 주방장에게 잘 배운 베트남인 조리사는 몇 개월 만에 이직해 버린다. 분명 잘 가르쳤는데 한국 주방장이 가르치던 방식을 베트남 조리사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해 경영주가 원하는 맛을 구현하지 못하기도 한다. 게다가 모든 물가가 한국보다 저렴한 듯하지만, 실상은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자재가 베트남에서는 구하기 힘든 사례도 많다. 한국에서 식자재 도매상에 따라 공급되는 식재료의 신선도와 가격이 천차만별이듯 베트남에서도 좋은 식자재 도매상을 찾기도 쉽지 않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통역을 고용해 전화 몇 통으로 신뢰할 수 있는 식자재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문을 닫은 일식 가맹점 매장과 카페. 호찌민 하이바쯩 상권 /유영국
■한국의 맛을 ‘재정의’하라
과감한 투자로 실력 있는 한국인 조리사에 신선하고 가성비 넘치는 식자재 공급망까지 확보했더라도 베트남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국의 맛을 과감하게 잊어야 한다. 베트남이 아세안 한류의 원조이고 베트남 사람들이 직접 김치를 담가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지만, 한국에서 생각하는 한국의 맛과 베트남 사람이 선호하는 맛은 다르다. 베트남인 경영주가 운영하는 한국 음식점에서 음식 맛을 본 예비 창업자들은 ‘이것은 한국 음식이 아니다. 내가 진정한 한국의 맛으로 베트남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며 의욕을 불사른다. 하지만 ‘진정한 한국의 맛’을 선호하는 베트남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도 ‘한국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있는데 변형된 맛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다. 그렇다면 혹한의 날씨에도 한국인들이 사랑한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유럽에서는 커피로 인정조차 못 받아 카페 메뉴에 오르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해외에서도 당연하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외식업계에서 수십 년을 일한 전문가들조차 막상 베트남에 진출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신뢰할 수 있는 베트남 직원 확보’다. 한국에서도 직원 구하기 힘들어하는데 베트남에서 한국인 경영주의 마음에 드는 직원을 구하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당장 의사소통이 문제다. 한국어 통역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말의 50% 수준을 통역하는 사람의 한 달 급여가 우리 돈 100만원 내외다. 또한 사업 초창기 직원들의 근태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기강을 잡기 위해 강한 톤으로 말해도 마음 약한 통역 직원을 거치면 말의 뉘앙스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운 좋게 성실하고 정직한 직원을 채용하더라도 인근 경쟁 한국 식당에서 급여를 조금 더 주고는 빼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높디높은 베트남 상가 임대료도 힘겨운 요소다. 호찌민과 하노이의 중심 상권 임대료는 서울 여느 지역 못지않게 비싸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업체 세빌스(Savills) 호찌민 지사의 2023년 10월 리포트를 보면 호찌민 중심부의 임대료는 1㎡당 80만~330만베트남 동(약 4만4000~18만원)으로 나온다. 최저치 임대료를 적용해도 30평형 식당의 한 달 임대료가 약 435만원이다. 이마저도 베트남 건물 특성상 가로 넓이가 4.8m로, 좁고 깊숙한 구조인 데다 2~3층 건물을 통째로 빌려야 하는 등 제약 조건도 많다. 그래서 트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건물 2~3개를 동시에 임대해 넓이를 넓히려고 하는데 건물주가 각기 다르다 보니 식당 운영 중에 갑자기 인테리어 구조가 달라지거나 건물 한쪽이 아예 없어지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해외에서 외식업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나 겪는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하며 나름 성공적으로 사업을 일궈온 분들도 베트남에서 직접 겪는 일이다.
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힘들게 마련이지만 해외에서 사업을 한다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막연하게 소득 수준이 낮다는 생각, ‘K푸드 열풍’이라는 말만 듣고 베트남에서 사업을 벌였다가는 아무리 한국에선 전문가였다 하더라도 낭패를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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