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가겠는데?" 미리 도망간 '거리의 탈옥수' 수천명…새 피해자 속출

[MT리포트] 감옥 대신 거리 활보하는 그들(上)


구속 피한 사기꾼, 도망쳐 또 사기…'거리의 탈옥수' 작년 3812명 역대최다




A씨는 지난해 7월 투자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선고 직전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실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되자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도피 중에도 A씨가 사기 범행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피해자가 속출했다. 수사당국이 6개월 동안 A씨를 추적해 올해 1월 검거했을 때 A씨는 지명수배만 9건, 재판 진행 중인 사건 2건 등 11건의 투자사기를 저지른 뒤였다. 전체 피해금액은 65억원에 달했다.

금고 또는 징역형 확정 선고 직전 도주한 '자유형 미집행자'(이하 미집행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인권 보장과 맞물린 불구속 재판 확대의 씁쓸한 이면이다.

감옥 대신 거리를 활보하는 사실상의 탈옥수들이 늘어나는 만큼 A씨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이 추가범죄를 이어가면서 피해가 커지는 경우도 더 많이 보고된다. 문제는 수사당국이 미집행자를 추적·검거하려 해도 합법적인 수단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법치 실현과 사회 보호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1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징역형 등을 확정 선고받은 범죄자 가운데 3812명이 형 집행을 피해 도주했다. 매년 발생하는 미집행자 규모로 역대 가장 많았다. 5~6년 전만 해도 3000명 안팎이었던 숫자가 어느덧 4000명을 넘본다. 미집행자 수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973명→3078명→3378명→3571명→3812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새로 도주한 3812명 외에 2022년까지 검거하지 못한 채 남아있던 미집행자 2265명을 합하면 미집행자가 6077명으로 늘어난다. 검찰은 이 가운데 지난해 3683명을 붙잡아 형을 집행했다. 역대 최다 검거 성적이지만 여전히 지난해 말 기준으로 2200여명이 검거망을 피해 도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피고인 방어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게 부쩍 두드러진 미집행자 증가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법원은 2021년 1월 피고인의 법정구속 기준에 대한 대법원 예규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에서 '구속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바꿔 시행했다.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면서 상급심에서 다퉈보려고 하면 재판부가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사례도 늘었다.

방송인 박수홍씨의 출연료 등 6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14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면한 박씨의 친형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에서도 징역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법정구속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미집행자가 늘어나는 또다른 이유로는 피고인이 법정에 안 나오는 궐석 재판에 대해 이렇다할 대비책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불구속 재판 중에는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법원에 소재 파악 의무가 없는 데다 24시간 감시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고 당일 재판에 불출석했다가 결과를 듣고 도주하는 경우가 적잖다.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는 법의 사각지대를 사법당국이 방치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불구속 재판 중 피고인이 도주하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지만 마음먹고 도주하는 이들을 짧은 기간에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문건일 법무법인 일로 변호사는 "영장을 발부해도 해당 사건에서 파악된 피고인의 정보를 기반으로 추적해야 한다"며 "기존 전화번호와 주소를 다 바꾸고 잠적하면 신속히 붙잡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도주한 이들을 강제 수사할 법적 수단도 마땅찮다. 형이 확정된 미집행자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지 않는다. '법률에 따라 체포·구금된 자가 도주한 경우'는 도주죄가 성립하지만 현행 형법상 미집행자는 '체포 또는 구금 전'에 도망쳐 도주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휴대폰 등 통신기록을 토대로 일일이 탐문수사해 검거하는 방법밖에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받는 피의자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강제수사를 허용하면서 유죄가 확정된 뒤 도주한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제한적인 수사만 가능하도록 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법 전문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자유형 미집행자들에 대한 형 집행률을 올리는 게 법치국가 원리에 비춰 타당하다"며 "현재 방법으로 추적에 어려움이 크다면 제도적 수단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징역형 피해 도망가도 탐문수사가 전부…미국은 FBI 감청도 불사




한국에서는 법원 판결을 통해 형이 확정됐지만 처벌을 피해 도주한 자유형 미집행자(이하 미집행자)를 강제조사할 방법이 없다. 통신영장으로 확보한 통화내역이나 기지국 정보를 토대로 탐문수사를 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이마저도 미집행자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거나 대포폰을 사용하면 무용지물이다. 사실상의 탈옥수를 검거하기 위해 법적으로 다양한 수단과 권한을 동원할 수 있는 선진국과 차이가 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기 검거는 꿈꾸기도 어렵다. 주변인을 설득해 소재 정보를 얻거나 오랜기간 잠복수사를 벌이는 식으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그나마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지난해 10월 장기 잠복 수사 끝에 가족과도 10년 이상 연락을 끊은 채 도피 생활을 이어온 경제사범을 검거한 대표적인 사례다. 업무상 횡령 혐의 등을 받았던 A씨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하던 중 징역 2년이 선고, 확정됐다. 검찰은 A씨를 잡기 위해 A씨의 전 직장 관계자 등 주변 인물을 일일이 탐문하고 전화와 메신저 내역을 분석했다. 말 그대로 주변인을 설득해 B씨의 은신처를 확인하는 '고전적인' 수사기법 외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형 미집행자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주변 인물들에게 수사 협조를 구하는 일이 쉽진 않다. 정읍지청은 지난해 10월 수사 기록을 검토하던 중 형 미집행자 B씨에게 급여가 지급된 내역을 확인하고 B씨의 이전 고용주를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고용주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자 검찰은 세 차례 출장 조사를 나가 고용주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고용주가 급여를 지급한 계좌는 B씨가 거주하는 주거지의 임대인 계좌였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임대인에게 B씨의 연락처를 넘겨받아 B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미집행자를 검거하기 위한 수사 수단이 마땅찮은 것은 국내 형법에서 체포 또는 구금 전에 도망친 미집행자에게는 도주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에 따라 체포·구금된 자가 도주한 경우에는 도주죄가 적용돼 압수수색 영장 발부 등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선고 직전 도주한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검찰이 범죄 피의자를 수사할 때는 압수수색 영장 등을 청구할 수 있지만 막상 유죄가 인정돼 형이 선고된 뒤에는 압수수색 영장 등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기소나 형 집행, 법 적용을 피해 도주한 이들을 '도망자'로 보고 체포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 발부는 물론 도망자의 친·인척 등 주변인에 대한 감청을 포함한 가용 수단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했다. 법무부 산하 연방보안관실(USMS)이 일차적인 수사를 맡고 중요 범죄 피의자일 경우에는 연방수사국(FBI), 비밀경호국(USSS), 마약단속국(DEA)도 투입된다.

독일도 일반적인 수사 과정에서 청구할 수 있는 압수수색 영장을 자유형 집행을 위해서도 행사할 수 있도록 일찍부터 형사소송법에 규정했다. 프랑스 형사소송법에도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시에 따라 도주한 자를 찾기 위한 압수수색 검증을 할 수 있다'는 강제수사 근거가 마련돼 있다.
백과
전편:네타냐후에 질려버린 美, 안보리에 '즉각휴전 촉구' 결의안 냈다
다음 편:고려대 총장 “비수도권 대학, 의사 육성 인프라 있을지 의문”